대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심리학을 책을 통해 접한 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제목의 소설책이지만, 책 속의 여자 주인공은 심리치료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그것을 치유하여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서른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되지 않았다. 내 삶에서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시기도 아니다. 이 책을 집어든건 그저.. 누군가의 독서평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자기한테 문제가 있는거 같다고 했던 말.
작가는 대부분 상담경험을 통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소설 속,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얘기를 하며 쿨함에 목숨 거는 사람들, 방어기제, 일과 인간관계, 사랑과 결혼 등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소설이 아닌 독자들에게 무언가 딱딱딱. 항목을 정해 알려주려 하는 책의 구성 때문일까.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 반나절 만에 읽어버렸지만 책에서 콕콕 집어 얘기해준 항목 중에는 크게 마음에 남는 것이 없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타인이 들려주기에 다가오지 않았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을 잠시 쉬어가며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 책이다. 쉼표를 찍는 듯한 느낌으로.
그래도 굳이 기억되는 항목을 꼽자면 일과 인간관계 속에서의 직상에서의 인간관계를 바라지 말라는 이야기. 그리고 대부분은 이 책에 대해 얘기해 준 사람이 떠올랐다. 아니 처음부터 그것을 찾으려 책을 집어든걸지도 모르겠다. 쿨한 사람.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사람. 상처 입기 두려워 거리를 두고, 외로움을 참아내는 이. 타인의 눈에 비쳐지는 자신의 이미지에만 관심갖는, 자기중심적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다른 이들의 사랑을 갈망하는 이. 항상 웃는 모습, 즐거운 모습, 괜찮은 모습만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
항상 그 정도 거리만을 유지한다면 살아가는게 괜찮다면, 문제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과연 그럴까... 때로는 힘들다고, 울고 싶다고, 죽을 것 같이 힘들다고.. 얘기해도 좋다. ... 그런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뒤늦게나마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거 같다.
#1. 성경학교 에스더 선생님은 블랙홀이다. 그 분의 살아넘치는 표정을 보고 있자면 그저 율동 가운데 빠져들고 싶다. 슈퍼 히어로와 나는 하나님의 리더 라는 찬양은 가히 마약 수준이었다.
#2. 전도사님은 총무들이 원정대를 위해 기도를 하자고 하셨다. 총무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기도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난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 열심히 봉사하는데 혼자 앉아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일손이 부족한 곳을 찾았고, 총무단을 사역팀으로 내몰았다. - _-;;
#3. 첫날 오후 도배팀에 배정 받았을 때, 오전 동안 천장에 한 장의 도배지를 붙여 놓았다. 그나마 한 장도 방향이 틀렸다. 재단상 길이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했다. 벽지에 붙인다고 재단해 놓은 도배지들은 여유 없이 모두 3~5cm 정도 짧았다. 네 명 모두 도배 경험이 없는 분들이었고, 도배지는 이미 재단되어 있다고 했다. 재단사가 해 놓은 거라고 했는데.. 이상했다. 재단사들은 짧게 붙이나.. 결국 천장과 벽 모두 거의 다시 재단했고, 간산히 시간내에 마칠 수 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잘했다고,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다음날 다른 팀이 벽에 짧게 붙은 도배지 땜빵하러 갔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도배지는 재단사가 자른게 아니란다.
#4. 원정대 최고의 개그는 이만형 목사님의 "약할 때 강함되시네." 비타민과 정염제를 먹어야 한다며.
#5. 둘째날 투입 된 도배팀에는 오리지날 쪽방 도배팀이 두 분이나 계셨다. 도배지를 붙이는 방향이 나와 하는 말이 달랐다. 나는 미봉선을 미봉선이 없는 쪽이 덮어서 안 보이게 해야 한다고 했고, 그 분들은 미봉선과 미봉선을 만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그렇게 하는건가 보다 했다. 자매분들이 도배지를 척척 붙이시는 인재들이었으니까. 나중에 알아보니 미봉선이 미봉선 없는 쪽을 덮는 거란다.
#6. 둘째날 저녁은 통돼지 바베큐 파티였다. 마을잔치는 지원팀이, 원정대는 총무단이 준비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고기가 다 떨어졌고, 총무단은 고기 한 점 맛보지 못했다. 밥이라도 먹자고 접시에 밥과 야채만 올려두고 총무단이 모였다. 억울했다. 밥만 든 접시를 들고 돗자리를 돌아다니며 고기가 좀 남은거 같은 그룹에 들어가 고기 몇 점만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한 그룹에서 한 접시. 다른 그룹에서 또 한 접시를 얻었다. (두 번째 그룹에서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나이를 말해주어야 했다.) 고기동냥하러 다니는 불쌍한 총무단을 위해 사람들은 남은 고기와 야채를 깨끗하게 모아 주었고, 십시일반으로 모인 음식 덕에 우리는 어느 그룹보다도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고기 한 점에 감히 오병이어의 감동을 느꼈다고나 할까.. ㅋ
인턴에게 휴가가 없기에... 못 갈 뻔 하였지만, 다행히도 휴가를 낼 수 있었다. 휴가라 하기에는 모하다. 토요일에 나가 이틀을 채워야 하기에. 하지만 감사하다. 이곳을 가게 된 것에 대해. 3일간, 가슴이 아리지만 행복했다.
태안지역의 해수욕장은 개장이 불가능하다. 어업도, 관광업도 불가능한 태안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자립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우리의 컨셉은 이거였다. 한 마을을 통째로 도와주자. 변화시키자. 300 여명의 청년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마을에 들어가 민박을 하고, 밥을 사먹고, 봉사를 한다. 시간쓰고, 돈 쓰고 온자는 거다. 300 여명의 청년들이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참여했고, 미용, 안마, 도배, 방역, 농활, 페인트, 벽화, 보수, 성경학교, 카페 등 10 여개의 팀이 구성됐다. 직접 사역을 나가진 않지만 사역을 나가는 이들을 위한 지원팀, 총무단도 빼놓을수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달란트를 사용한 봉사였다.
북적대는 머리하는날
미용팀에는 명동 제오헤어에서 헤어 디자이너 분들이 미용실 문 닫고 오셨다.
안마 두드림팀
디자이너 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멋쟁이로 만들어주셨다. 변변한 미용실 하나 없는 마을에서 명동의 헤어 디자이너 분들이 커트, 파마, 염색을 해 드렸다. 디자이너 분들은 하루 밖에 휴가를 내지 못하셔서, 이튿날은 염색만 해드렸다. 가장 붐비는 사역팀이었다. 첫날 시작부터 둘째날 저녁이 다 될때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미용팀은 끼니 때가 다 지나서야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안마 두드림팀은 한의사 분을 주축으로 어르신들의 피로를 풀어드렸다. 안마 뿐만 아니라, 부황, 뜸, 침으로 뻐근한 곳을 시원하게 해 준 팀이다. 70 80 인생을 어촌에서 살아오신 분들의 손과 발을 주물러 드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미용과 안마 모두 어르신들과의 말상대가 더 중요했다. 몸으로 뛰어다니며 일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것이 그 분들과의 말동무이리라. 두런두런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고구마 전도법으로 한 번 찔러도 보고. 괜한 자식 얘기는 좋은 대화거리가 아니었다.
각 가정마다 소일거리로 하고 계시는 농사일을 도우려는 농활팀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서울에서 온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 농사를 시키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와서 농활을 할 거라는 말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몇일 고생하시면서 농사일을 거진 다 해놓으셨다. 귀한 자식들 땡볕에서 고생시킬 수 없다는 말만 연거푸어 하셨다.
도배팀
도배, 램프, 방충망 팀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벽지를 새로 붙여드리고, 형광등을 갈아드리고, 방충망을 달아드렸다. 농사일은 어르신들이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은 미리 해놓을 수 없으시기에, 바람 하나 들지 않는 방 안에서 고생하는 우리가 안타까우시다며 그저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전문가도 아닌 청년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썩 드시지 않을텐데도... 좋다고.. 고맙다는 말과 간식들을 계속 내어주셨다.
땡볕 아래서 고생이 가장 많았던 팀은 방역팀이었다. 항상 무거운 방역장비를 들고 야외로, 벌레와 싸우며 풀밭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누구보다 피곤했을 것이다.
성경학교 팀은 의항리와 옆 마을의 유치부와 초등부 아이들을 모두 모아 성경학교를 해 주었다. 그렇게 두 마을을 모두 모아도 30 여명 남짓한 아이들이었다. 성경학교 찬양을 위해 밴드가 왔고, 아이들 사역에서의 프로분들이 진행하셨다. 선생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던 어촌 아이들도 프로의 표정과 진행 앞에서는 그저 즐거웠다. 신나는 찬양과, 페이스 페인팅, 물총싸움, 종이접기, 손모양 석고 만들기..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이틀간 뛰어 놀았다. 의항교회 목사님과 선생님들은 이런 성경학교를 아이들에게 해준적이 없다며 고마워하셨다. 시작예배를 같이 드린 나도 에스더 선생님의 찬양과 율동에 완전 빠져들었으니. 에스더 선생님의 찬양과 율동시간은 원정대 일정 중 가장 흥겨운 시간이었다. 슈퍼 히어로와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나는 하나님의 리더라는 내용) 찬양은 그 중 백미였다.
일색으로 칠하는 원칼라 페인트팀, 예쁜 그림을 그려주는 벽화팀은 교회에서 멀수록 고생이었다. 땡볕 아래서 무거운 페인트를 옮기고, 페인트통을 비워가며 시원한 물 하나 없이 고생했다. 교회, 학교, 주차장과 같은 공공장소를 주로 칠했기에 어르신들과 직접 마주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예쁘게 그려진, 칠해진 벽들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미소를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꽃과 나비와 동물들이 뛰노는 학교 벽화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예쁜 그림으로 마을을 아름답게 바꿔준 벽화팀
하루 먼저 선발대로 들어온 지원팀은 가장 큰 숨은 일꾼이었다. 원정대원들의 숙소, 식사, 교통 등 모든 뒷일들을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고 늦게 자며 책임졌다. 마을잔치를 위한 도우미 일로 어르신들이 통돼지 바베큐를 드실 때, 이리저리 뛰어가며 열심히 도왔고, 정작 본인들은 고기 한 점 맛보지 못하고 어르신들이 돌아간 후에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모든 원정대원들이 예배를 드리며 찬양을 드릴 때, 해가 지기 전 일을 마쳐야 한다며 쓰레기를 정리하고 테이블, 천막, 음향장비 등의 시설물들을 철수하느라 예배마저 늦게 들어간 뒤, 예배를 마칠 때도 온전하게 마치지 못하고 미리 나와 원정대원들이 숙소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차량운행과 길목 요소요소마다 경광봉을 들고 안내하기 위헤 뛰어 나갔다. 원정대가 성공적으로 일정을 소화해 낸데에는 300 여명의 받침대가 되어준 지원팀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총무단이었다. 전체를 아우르며 행사를 준비하고, 일손이 부족한 사역팀에 들어가 도와주는 것. 덕분에 전체의 사역을 두루두루 볼 수 있었다. 총무단은 일정이 시작되기 전과 후에 전체일정을 준비하고, 일정이 시작된 시간에는 일손이 부족한 사역팀으로 들어가 일을 도와주었다. 일종의 별동대. 나는 도배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개인당 7 만원씩의 돈을 내고 들어간 원정대. 교통비를 제외하고 할인된 가격을 고려한다면 약 2000 여만원이 원정대원들에게서 의항리로 보내졌다. 교회에서 제공한 각종 시설들과 장비들, 사역 재료들, 식비들까지 고려한다면 3000 만원 정도의 예산이 사용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3박 4일의 일정동안 하루 아침의 삶의 터전을 잃으신 분들의 마음을, 그 자연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까매진 머리를 보시며 젊어졌다고 웃으시고, 새로 도배가 되고, 방충망이 설치되고, 형광등이 바뀐 방 안에서 신혼방 같다고 좋아하시고, 안마 받으시며 누워서 청년들과 하는 이야기에 껄껄 웃으시는 어르신들. 성경학교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통해 이 곳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의항리 주민분들의 마음 가운데 진정한 위로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위로가 우리 원정대와 같은 분에게서 오는 위로가 되기를. 의항리에서 지낸 3 일간의 일정은 천국이었다.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기에 슬펐지만, 작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일을 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의항리 주민분들의 삶 가운데에도 천국이 찾아오기를 원한다. 이 세상에서도. 영이 속한 세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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